<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 강용수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던 철학자인 쇼펜하우어는 40대에 높은 명성을 얻으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가 생각하는 인생의 의미는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라는 말 속에 함축되어 있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을까?

학창 시절,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대학 시절,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

취업 후, 결혼을 위해서? 돈을 위해서?

이 모든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해서?

사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과정인 듯 하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삶이 엇비슷하고 그 비슷한 삶을 빠져나오면 주변의 오지랖은 얼마나 많은지. 표준화된 길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이다.

일반적인 길 위에서 달려가는 것도 좋다. 하지만 달려가기 이전에, 달려가는 도중이라도 한번쯤은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달려가고 있는가?

누구는 당연히 ‘나’이겠지만 ‘무엇’이란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결국에 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닐까?

행복, 그거 어떻게 찾는건데?

우리의 꿈을 쫓아서, 부유해지기 위해서,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서 등등 행복을 위해 우리가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찰나의 순간들이다. 그 순간들을 얻기 위해 우리는 노력을 해야 하고 어려움을 이겨내며 즐겁지만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강, 부, 관계 속 행복한 시간을 찾기 위해 각각의 목적과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 말해준다.

건강

건강은 육체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고려되어야 한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프로그램이나 치료법들이 많이 나오기도 한다. 철학은 이러한 우리의 정신을 다루고 예방하는 측면에서 효과적이다. 좋은 몸을 갖기 위해 단련을 하듯이 우리 정신에도 단련이 필요하다.

일상에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학교든 직장이든 우리가 속해 있는 곳에 만족하지 못하고 무엇인가 불만족스럽기에 나타나는 것이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책에서 나오는 행복을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행복, 과연 언제 느끼고 있을까? 성취하였을 때, 목표를 이뤘을 때 등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을 경우다. 이를 이루기 위한 과정들, 이루지 못했을 때, 방해요소로 인해 문제가 발생 하였을 때는 스트레스는 받는다. 심지어 그 찰나의 행복한 순간들을 위해 우리는 긴 시간동안 노력해야 한다.

때문에 쇼펜하우어는 미래의 행복을 쫓기보다는 현재의 고통을 줄이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또한 과거의 행복했던 시간들도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고 현재의 삶을 즐기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가 안내하고자 하는 길은 ‘과도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그 중간 어딘가‘를 찾는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열심히 살고 욕심을 부리는 이유는 결국 부를 쌓기 위해서 아닐까. 돈도 행복처럼 우리의 심리에 따라 다양하게 다가온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스트레스를 받고 많아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항상 부족하게 느낄 것이다.

사치품을 사지 않고 생활하는데는 사실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다. (물론 우리나라의 비싼 집값, 물가가 한 몫하지만 말이다.) 과거 본질적인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던 사람이라면 더욱 느낄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진정한 만족을 위해 사는 삶이라면 그 최소한의 생활에 만족하게 되는 것이고, 결국 이 모습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듯 어떻게 그 최소한의 것만 추구하고 살겠는가. (아무리 최소한의 생활로 행복하더라도 스트레스를 받는 부유한 삶을 살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과하지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그 어딘가의 욕심을 통해 나의 성장과 성취를 이루며 부를 쌓아가는 삶을 추구하고 싶다.

관계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찾는 행복은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나 자신만 고려하여 만드는 행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더 쉽게 접근하였다. 사실 우리 모두가 느껴보지 않았을까?

코로나 시기 급작스럽게 사람들과 멀어지면서 오히려 같이 살고 있는 가족과의 시간은 늘어났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고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가족일지라도 너무 가깝게 지낸다면 결국은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우리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일정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도 ‘고슴도치’를 예를 들며 설명한다. 가시가 있는 고슴도치는 가까이 가면서 다른 고슴도치에게 찔리고, 상대에게도 상처를 주게 된다. (물론 현실에서는 가시를 눕혀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설명도 나온다.)

  1. 일정한 거리를 둔다.
  2. 행복을 상대에게 기대하기 보다는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3. 상대는 내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의 행복은 어디쯤 있을까?

학창 시절을 지나 사회에 뛰어들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대부분은 타지 생활로 머물더라도 비교적 단기간 (1~2년 정도)의 생활을 예상하며 살아왔다. 때문에 짐을 늘리지 않고 최소화하며 지낼 수 있는 생활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미니멀한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더욱 더 그런 삶을 해왔고 지난 몇 년 미니멀리즘이 한창 뜨던 시기에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나의 성격도 한 몫 하였다. 히키코모리처럼 방 안에만 있는 것도 좋아하고 사람들과 많이 어울리고 싶기도 하는 I 속 종종 나오는 E를 향한 동경이랄까. 내성적이라는 성격이 사회 부적응자라고 인식하던 학창시절을 지나 다양한 경험과 사색에 잠기는 시간을 보내며 내성적이라는 성격이 나에게는 큰 강점으로 되었다. (지금도 파워 E를 본다면 존경스럽다.)

그런 성격 덕분에 ‘나’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이 책에서 말하는 행복을 위해 내면에 집중하라는 것도 이미 실천 중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나에게 진정으로 집중하기 위해 여행 중이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을 통해 나의 행복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알 수 있었다. 사실 행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닌 나로부터 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그러한 삶들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결국 우리의 마음가짐을 통해 오는 것이었다.

현재의 힘든 삶으로 몰아둔 것은 자기 자신이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괴롭지만 이겨내야 하는 고통을 통해 성장을 하게 되고, 이 모든 것이 합쳐져 궁극적으로 추구하던 ‘행복한 순간’을 만들게 된다.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순간들을 함께 할 수 있지만 결국는 각자 자신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며 그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이 우리의 행복에 도달하는 것이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마흔이 아니더라도, 행복하더라도, 행복하지 않다면 더욱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읽어보며 우리의 삶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진리라고 하는 근본적인 것으로 다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근본이 되는 나 자신부터 챙기고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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